거룩한 절기로의 초대

서론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의 전야, 부활하신 주님을 기념하며 우리 역시 부활할 것을 소망하는 부활절의 눈부신 아침. 이 시간들은 많은 우리에게 깊은 신앙의 기쁨과 감사를 불러일으킵니다. 가족과 함께하고, 그리스도를 묵상하며, 공동체와 하나 되는 이 소중한 순간들의 가치는 매우 귀합니다.

하지만 잠시 멈춰 서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신앙의 진실한 표현으로 지키고 있는 이 날들이 하나님께서도 과연 가장 큰 기쁨으로 받아들여질지 고민해보고자 합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선물을 준비할 때 어떤 선물을 준비해야 그 사람이 가장 기뻐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고민을 위해서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이 전통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가 어디에 닿아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하나님의 명확한 말씀(신적 권위)이어야 할까요, 아니면 오랜 시간 이어져 온 교회의 전통(인간적 권위)일까요? 이 질문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직접 정하신 거룩한 시간들, 즉 성경의 절기들을 다시 돌아보게 합니다 (레위기 23장). 이 글은 현재 기독교가 지키고 있는 기념일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절기들이 지닌 더 깊은 의미와 권위를 발견하고,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도록 초대하고자 합니다.

크리스마스: 따뜻한 불빛, 그러나 성경 밖의 이야기

매년 12월 25일, 우리는 예수님의 오심을 기념합니다.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이날 태어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목자들이 한밤중에 밖에서 양을 쳤다는 기록은 오히려 추운 겨울과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초기 교회 성도들 역시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생일을 기념하는 문화가 없었고, 예수님께서도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하셨지만 생일을 기념하라고 하신 적은 없습니다.

4세기 로마에서 12월 25일은 '정복되지 않는 태양신'(Sol Invictus)을 기리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이 무렵 교회 지도자들은 당시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 날짜를 예수님의 탄생일로 선언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의 명령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이 아닌, 인간적인 권위에 따른 결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역시 그 기원은 성경 밖에 있습니다.

부활절: 잃어버린 뿌리와 단절의 역사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지키는 부활절은 본래의 성경적 맥락에서 조금 벗어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유대인의 유월절(Pesach) 기간에 일어났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은 유월절 어린 양의 희생을, 무덤에 계심은 무교절을, 그리고 부활하심은 첫 열매를 드리는 초실절을 정확히 성취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명하신 것도 바로 유월절 만찬 자리였습니다(눅 22:19). 초기 교회는 이 성경적 절기의 흐름 안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특히 325년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부활절 기념 방식은 유대적 뿌리와 의도적으로 분리되었습니다. 공의회 직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 결정을 전하며 교회들에 보낸 서한은 이러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냅니다.

"모든 절기 중 가장 성스러운 이 명절에 가장 무서운 범죄로 손을 더럽히고 정신이 눈먼 유대인들의 관습[계산]을 따르는 것은 특별히 가치가 없다고 선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들과 어떤 공통점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가증한 유대인 무리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 결정은 성경에 명시된 유월절-무교절-초실절의 연계성을 끊고, 인간적 권위에 의해 새로운 기준을 도입한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유월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희생과 첫 열매로서의 부활 사이의 깊은 연결고리가 희미해졌고, 우리는 부활의 기쁨 속에서 그 뿌리가 되는 유월절의 의미를 상당 부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부활절 달걀과 토끼 역시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상징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시간: 레위기 23장의 보물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정하신 거룩한 시간들, "여호와의 절기"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레위기 23장).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이 일곱 절기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만나고 그분의 위대한 구원 역사를 기억하게 하시려고 친히 제정하신 약속의 시간입니다. 이 절기들은 "영원한 규례"로 선포되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절기들이 단순히 과거의 사건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 전체 – 그분의 초림과 재림, 죽음과 부활, 성령 강림과 하나님 나라의 완성까지 – 를 미리 보여주는 예언적인 그림이라는 사실입니다.

  • 봄 절기 (예수님의 첫 오심과 사역): 유월절(죽음), 무교절(장사), 초실절(부활), 오순절(성령 강림)

  • 가을 절기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완성될 사역): 나팔절(재림 예고), 속죄일(회복과 심판), 초막절(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거함)

아래 표는 이 놀라운 절기들의 의미를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여호와의 절기 (레위기 23장)

절기 명칭 (히/영) 성경 구절 (레 23) 시기 (유대력) 이스라엘 역사적 의미 그리스도 중심적/예언적 성취

유월절

5절

1월(니산월) 14일 저녁

애굽의 장자 재앙에서 구원, 출애굽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고전 5:7)

무교절

6-8절

1월(니산월) 15-21일

애굽에서의 급한 탈출, 죄(누룩) 없는 삶 시작

그리스도의 죄 없는 삶과 장사되심, 성도의 성화 (고전 5:8)

초실절

9-14절

1월(니산월) 무교절 기간 중 첫 안식일 다음 날

첫 보리 수확 감사

그리스도의 부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고전 15:20)

오순절/칠칠절

15-22절

3월(시반월) 초실절 후 50일째

시내산 율법 수여 기념, 밀 추수 감사

성령 강림, 교회의 시작 (행 2장)

나팔절

23-25절

7월(티쉬리월) 1일

새해 시작 알림, 회개 촉구

성도의 모임, 그리스도의 재림 예고 (살전 4:16)

속죄일

26-32절

7월(티쉬리월) 10일

국가적 속죄, 대제사장의 지성소 출입

이스라엘의 회복, 최종 심판, 완전한 속죄 (히 9장)

초막절/장막절

33-43절

7월(티쉬리월) 15-21일

광야 40년 장막 생활 기념, 추수 감사

하나님께서 백성과 함께 거하심, 천년왕국, 영원한 안식 (슥 14:16, 계 21:3)

이 하나님의 시간표를 따라 절기를 지킬 때, 우리는 구원 역사의 큰 그림 – 과거의 성취, 현재의 은혜, 미래의 영광스러운 소망 – 을 더욱 깊이 깨닫고 경험하게 됩니다. 매년 이 절기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그분의 놀라운 계획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기념하는 영적 순례를 떠날 수 있습니다. 이는 단지 몇몇 사건에 집중하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하고 통합적인 신앙의 여정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합을 향한 부르심

우리가 성경의 절기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무엇보다도, 이 절기들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는 흔들리지 않는 신적 권위에 기초합니다. 크리스마스와 부활절이 교회 역사 속에서 소중한 의미를 갖게 되었지만, 그 시작은 인간적인 결정과 전통에 더 가깝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신실함은, 그분께서 친히 제정하신 소중한 절기를 존중하는 것으로 표현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는 성경을 우리 신앙의 최종 권위로 삼는 '오직 성경’의 정신과도 일치합니다.

또한, 성경적 절기로 돌아가는 것은 우리 신앙의 뿌리인 유대적 유산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유대인이었고 이 절기들을 지키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안타깝게도 이 뿌리로부터 멀어졌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단절하기도 했습니다. 잃어버린 절기들을 회복하는 것은 이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이스라엘과 이방인를 향한 하나님의 변함없는 계획을 인정하는 발걸음이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경적 절기의 회복이 유대인과 이방인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하나 되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입니다. 에베소서 2장은 감동적으로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14-16).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엡 2:19).

로마서 11장은 이방인 신자들이 이스라엘이라는 참 감람나무에 "접붙임" 되었다고 말합니다.

더 나아가 스가랴 선지자는 마지막 때에 이방 민족들까지도 예루살렘에 올라와 하나님의 절기를 함께 지키게 될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스가랴 14:16)

이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기가 특정 민족을 넘어, 그분을 경배하는 모든 백성이 함께 참여하는 연합의 장이 될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믿는 자에게 주신 이 거룩한 절기들을 함께 지킬 때, 우리는 역사 속에서 갈라졌던 "중간에 막힌 담"을 허물고 , 성경이 그리는 아름다운 연합, 즉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 사람" 으로 함께 서는 비전을 실현하는 귀한 발걸음을 내딛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발걸음을 어디로 향할까?

이 글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전통의 인간적인 기원을 간략히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직접 제정하신 성경적 절기들이 지닌 깊은 의미와 신적인 권위, 그리고 연합을 향한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우리의 예배와 기념 방식을 돌아보는 것은, 구원 계획에 대한 더 깊은 이해, 우리 신앙의 풍성한 유산과의 재연결, 그리고 무엇보다 유대인과 이방인 형제자매들과의 아름다운 연합이라는 놀라운 축복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과 교회 역사를 다시 한번 살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지금 우리가 따르는 전통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한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리고 계시는 연합의 길과 일치하는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물론, 그동안의 교회의 전통에 따라서 표현해 온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매우 소중하고 귀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신적인 권위로 제정하시고 영원한 규례로 삼으신 거룩한 절기들을 뒤로한 채, 인간적인 전통만을 따르는 현실이 과연 정당화될 수 있을지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 초대는 우리 모두가 성경에 더욱 깊이 뿌리내리고, 우리의 신앙 유산을 감사하며, 하나님의 계시된 뜻 안에서 이스라엘과 하나 되어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서기를 바라는 소망에서 비롯된 것입니다.